
길을 달리다가, 어디로 가려하기보다
그저 길을 따라 자동차로 달리다가,
낮선 산자락 마을 어귀에 멈춰섰다. 그 순간,
내가 달려온 길들이 거꾸로 돌아가려하자
늙은 회화나무 한그루가 기 길을 붙들고
서서 내려다 보고 있다.
한 백년 정도는 그랬을까, 마을 초입의 회화나무는
언제나 제자리에서 오가는 길들을 끌어안고 있었는지 모른다.
세월따라 사람들은 이 마을을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했으며
나처럼 뜬금없이 머뭇거리기도 했으련만,
두껍기 그지업는 회화나무 그늘,
(……)
다시 가야 할 길도 저 회화나무가 품고 있는지,
이내 놓아줄 건지. 하늘을 끌어 당기며 허공향해
묵묵부답 서있는 그 그늘아래 내 몸도, 마음도 붙잡혀있다.
집 안에서 키우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나무가 있다. ‘학자수’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진 ‘회화나무’다.
느티나무나 팽나무처럼 가지를 넓게 펼쳐 정자나무로 많이 심어키우는 나무다. 자유분방하되, 기개를 잃지 않는
가지가 학자를 닮았다고 본 게다. 마을 어귀에 선 회화나무 그늘은 오가는 사람들의 길을 끌어 안았다.
세월의 덮게가 겹겹이 쌓인 두거운 그늘이다. 사람도 새도 바람도 들어선다. 다시 걸어야 할 길을 학자를 닮은
나무에게 묻는다. 나이들면서 더 아름다워지는 나무에는 필경 세월의 지혜가 담겼을 게다. <고규홍* 나무칼럼니스트>
시: 회화나무 그늘- 이태수
